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는 우리나라의 주요 직업 400여개 가운데 AI와 로봇을 활용해서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을 분석해서 발표했습니다. 정교한 동작의 필요 여부, 창의력의 필요성, 예술과의 연관성, 협상 및 설득이 필요한지 등을 고려하여 순위를 매겼죠.
분석 결과,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순으로는 화가 및 조각가, 사진작가, 작가, 지휘자 및 작곡가, 만화가, 무용가, 가수 등이 꼽혔습니다. 배우, 모델은 14위, 연예인은 87위를 차지해, 주로 예술, 연예계 관련 직업이 자동화로 대체되기 어렵다고 예측되었습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 이러한 예측이 틀렸음이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AI로 만든 작품이 사진 공모전, 소설 공모전에 1등으로 입상하고, 버추얼 아이돌이 실제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 기반으로 인기를 끌며, 책 표지 일러스트가 AI로 그려진 것임이 뒤늦게 밝혀져서 문제가 된 사건까지. AI로 생성된 ‘예술작품’ 혹은 ‘예술가’를 기존과 동일한 가치로 인정을 해 줄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8년 동안 AI의 발전 속도가 직업에 대한 예측마저도 뒤엎을 만큼 빨랐다는 점입니다.
8년 전 예측에 대한 변명, ‘이렇게 빨리 발전할 줄 알았더라면’
8년 전 예측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자동화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 중에 2위로 꼽힌 정육, 도축원은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꼽혀 온 직업인데요. 자동화 로봇이 인력난 해소의 대책으로 꼽히면서 AI 기술을 활용한 도축 공정 로봇을 개발한 스타트업이 올해 2월, 창업 2년도 안 된 시점에 70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그런 예측이 당연했습니다. AI와 로봇에 대한 기대치를 인간의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노가다’ 과정을 없애주는 역할로 한정지었기 때문에, 단순 반복적인 일들이 쉽게 대체될 것이라고 본 셈이죠. 아마도, 그때 직업의 미래를 예측한 사람들은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줄 몰랐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딥러닝 기술의 진보, 크리에이티브 분야의 ‘게임 체인저’가 되다
특히, 딥러닝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크리에이티브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딥러닝은 대규모 데이터셋을 통해 복잡한 패턴을 학습할 수 있는 AI의 한 분야로, 이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기계는 이미지 인식,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등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발전 속도를 보였습니다.
딥러닝 알고리즘, 특히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s)과 컨볼루션 신경망(CNNs)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AI가 인간과 유사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 일등공신입니다. 예를 들어, GAN은 인간이 만든 이미지와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구분하는 두 신경망을 서로 대립시켜 훈련함으로써 사실적인 이미지 및 예술작품을 생성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인간의 예술작품과 AI가 만든 예술작품 간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자연어 처리(NLP) 기술의 발전은 AI의 텍스트 해석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2010년대 후반부터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와 BERT(Bidirectional Encoder Representations from Transformers)와 같은 모델에 의해 촉진된 NLP의 발전은 AI가 인간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새롭게 생성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AI가 뉴스 기사를 작성하거나 시를 창작하고, 감성적인 글들을 더욱 정교하게 생성할 수 있게 되면서, 글쓰기와 콘텐츠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기에 GPU와 TPUs(Tensor Processing Units)와 같은 하드웨어의 기술적 발전 또한 큰 몫을 해냈습니다. 딥러닝의 핵심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훈련하는지’에 달려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복잡한 모델을 훈련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킨 데에서 큰 공을 이뤘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종합체인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것으로 분류되었던 예술 관련 직업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마디로 ‘게임 체인저’가 되었습니다.
AI, 예술 분야 직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AI는 이미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글의 DeepArt를 통해서는 유명 화가 풍의 그림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고,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오픈AI의 Jukebox를 사용해 음원을 간단히 생성할 수 있습니다. GPT-4나 제미나이,Claude로는 문맥을 고려한 자연스러운 글을 쉽게 쓸 수 있고, 오픈AI가 공개한 영상제작 서비스 Sora는 동영상 제작 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물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AI의 발전은 기존 창작물에 대한 훈련과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한계 또한 존재합니다. AI는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하며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AI는 기존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점점 더 독창적인 작품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I에 의한 창작물이 실제 예술가의 작품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AI는 모방을 넘어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단계까지 왔다고 보지만, 다른 이들은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단순 모방하는 것에 그친다고 비판합니다.
분명한 것은, AI의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의 역할은 계속 확대될 것이며, 이는 예술과 창작, 그리고 예술 분야 종사자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술가, 작가, 그리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며,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미래를 재정의할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예측해보면, 10년 후 ‘자동화로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의 상위권에서 예술 분야의 직업군은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기술의 발전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이를 경쟁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AI의 존재감이 커지는 만큼, 예술가들도 이를 자신의 창작 활동에 통합하여 더욱 혁신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창조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10년 뒤 ‘제 3의 예술’이 매우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