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뉴욕 증시에서 1등주가 바뀌었습니다. 2021년 11월 이후 약 2년 2개월간 정상을 지킨 애플이 시가총액 2위 기업으로 내려앉은 건데요. 왕좌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차지했습니다. MS가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대장주로 주목받은 결과인데요. AI가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동안 애플의 존재감은 희미해졌습니다. '혁신의 상징'이던 애플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그리고 뒤늦게 'AI 시대'에 도전장을 내민 애플의 모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추락한 ‘혁신의 아이콘’? 위기에 처한 애플
지난해 3조 달러를 넘었던 애플의 시총은 올해 4월 들어 2조6000억 달러로 줄었습니다. 4000억 달러(약 550조원)가 증발한 건데요. 미국 증시 호황에도 애플 주가는 반대로 향했습니다. 이 시기 월가에서는 “애플이 코카콜라와 비슷한 가치주가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애플의 매출 성장세는 정체됐지만 최근 화제의 중심인 AI에서 그렇다 할 성과와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은 애플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 감소했고, 올해 매출도 2%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매출 비중이 높던 중국에서의 아이폰 판매량은 올해 첫 6주 동안 전년 동기 대비 24% 줄었습니다. 시장점유율은 1년 새 19%에서 15.7%까지 떨어졌습니다. 순위도 2위에서 4위로 밀렸고요. 여기에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 관련 조사 등 악재가 줄 잇는 상황입니다.
특히 ‘애플카 프로젝트’의 중단은 투자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는데요. 자율주행 전기차(EV) 애플카 개발은 2014년부터 100억 달러(약 13조8500억원)를 쏟아부은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테슬라의 아성을 무너트릴 것으로 기대됐었죠. 하지만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 현실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난 2월 중단됐습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사상 최악의 실패’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AI 시대’ 주역 된 챗GPT… 약진하는 경쟁사들
애플카의 실패가 준 외상은 작지 않았습니다. 애플이 자율주행차에 공을 들인 사이 엔비디아·MS·메타 등 경쟁사들은 AI에 올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MS가 AI에 집중해 성과를 낸 동안 애플은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잃었기 때문인데요. 애플이 한때 AI 선구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뼈아픈 결과입니다. 애플은 이미 한참 전인 2011년 아이폰4S에 음성인식 AI 서비스 ‘시리’를 탑재해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리는 현재 아마존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보다 사용량은 많지만 정확도나 유용성 측면에서 경쟁사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이 오픈AI는 MS와 손잡고 생성형 AI 챗봇인 ‘챗GPT’를 만들었습니다. 2022년 출시되면서 AI 시장의 판도를 바꿨는데요. 지난해 여름 출시된 GPT-4는 미국 모의 변호사시험과 대학입학자격시험(SAT) 등에서 ‘인간 수준의 능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여름에는 수학·과학 문제 풀이 능력을 갖추고, 문자뿐 아니라 이미지·영상까지 생성할 것으로 예상하는 GPT-5가 출시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월간 이용자 수는 15억명 수준이었다죠.
애플의 본업인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AI 활용 열기가 뜨겁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실시간 통·번역 등 AI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 S24 시리즈를 선보였는데요. 이에 따른 영향인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 집계 결과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 1위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4분기 깜짝 1등을 차지했던 애플은 AI 스마트폰 시대가 개막하며 다시 삼성전자에게 선두를 내줘야 했고요.
‘절치부심’ 애플, iOS 18에 ‘생성형 AI’ 탑재 가능할까?
애플도 늦게나마 생성형 AI에 과감한 투자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 주주총회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연내 생성형 AI 관련 계획을 밝히겠다”고 공언한 뒤인데요. 최근 애플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플은 생성형 AI 학습용 데이터 확보에 1억 달러(약 1300억원)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셔터스톡에서 수백만장의 이미지와 사진 라이선스를 구매하는데 5000만 달러를 쓰고, 주요 언론사·출판사 등에 콘텐츠 이용료로 5000만 달러를 지급할 것으로 보입니다. 과감한 투자로 선발주자들과 격차를 좁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지난 3월에는 캐나다의 AI 스타트업 다윈AI를 인수했는데요. 시장에서는 애플 기기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AI 역량 강화 목적으로 풀이합니다. 지난해 초부터 ‘에이잭스(Ajax)’로 불리는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애플 GPT’라 불리는 챗봇을 시험해왔지만 한계에 부딪힌 탓입니다. 애플은 또 최근 구글의 생성형 AI 엔진인 ‘제미나이’를 아이폰에 탑재하기 위해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애플이 자체 AI 개발보다는 파트너십으로 AI를 개발하는 편을 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구글과의 협업은 규제 당국의 반독점법 추가 조사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3월 말 애플의 ‘폐쇄적 생태계’를 불법적인 배타적 행위로 보고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앞서 구글의 ‘검색 엔진’에 대해서도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도 생성형 AI 후발주자인 애플의 노력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올해 내놓을 운영체제인 iOS 18에 생성형 AI를 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애플, ‘AI 전략’ 6월 WWDC에서 발표할 듯
오는 6월 10일에는 애플의 연례개발자회의(WWDC 2024)가 열립니다. 이 행사에서 생성형 AI에 대한 청사진과 iOS 18에 새롭게 도입될 AI 기능들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매우 중요한 행사가 될 것입니다. 반등의 분수령이 될 수 있지만, AI 랠리에서 낙오된 기업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멜리우스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AI 기능이 애플의 새로운 ‘슈퍼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대와 실망은 반비례하는 법. 생성형 AI를 돌파구로 삼으려는 애플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간입니다.